천천히 걸어
늘 오르는 산을 오른다.
저 멀리 하늘색이
이젠 완연한 가을색이다.
청아하리만큼 보기에 좋다.
지렁이 한 마리 어디로 가는지
꿈틀 꿈틀 힘겨운 삶을 향해 간다.
나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.
요즈음 머릿속이
자꾸 텅 비어간다.
사는 게 의미도 없고
사는 게 재미도 없다.
뭘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.
역마살이 낀 것처럼
이 나라 저 나라
마음 가는 대로 떠돌았는데
돌이켜 생각해보면
내가 그동안 뭘 했지 싶다.
모든 건 찰라고
모든 건 지금 여기에 있는데
지나간 과거도
닥치는 미래도
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
비롯되는데
지금 내가 재미가 없다.
가고 싶고
하고 싶고
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식어버린 것 같다
내가
참 무력하다
배롱꽃도 이쁘고
가을 하늘도 저리 이쁜데